무더운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들어보기를 바란다. (2018. 07. 17)
화수분처럼 음악을 쏟아냈던 청년, 머릿속에 넘쳐나는 음악을 악보로 옮기느라 평생 바삐 지냈던 청년. 바로 슈베르트이다. 그는 31세에 요절했다. 나의 31세를 떠올려보면 아직 꽃을 채 피우지도 못했던 어린 나이에 슈베르트는 무려 1,000곡 가까이 되는 곡을 세상에 남기고 떠난 것이다. 이는 여느 작곡가와 비교해도 월등히 많은 곡 수인데,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1년에 무려 150곡이 넘는 곡을 작곡했던 해도 있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렇게 늘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슈베르트는 생전에 인정받은 작곡가는 아니었으나, 누구보다도 예술가적인 삶을 지향했고 예술가답게 살았던 청년이다. 마치 예술과 문학 없이는 한순간도 숨을 쉴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그의 주변에는 늘 예술가가 넘쳐났다. 슈베르티아데라고 하는 연주 및 사교 모임을 조직하여 음악가뿐만 아니라 화가, 극작가, 시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그의 생에 가장 큰 기쁨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간혹 단순히 음악 그 이상의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눈을 감고 스피커 앞에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고 또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마치 문학과 예술이 그의 음악에 푹 안겨 있는 듯, 슈베르트의 음악 속에서 모든 예술이 자유롭게 평화를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
슈베르트 하면 떠오르는 음악은 단연 ‘가곡’일 것이다. 1,000곡 가까운 곡 중 600곡이 넘는 곡이 가곡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널리 알려진 명곡도 많다. 또 피아노 소나타와 즉흥곡들도 매우 중독성이 강하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곡은 슈베르트의 또 다른 명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D.934」이다. 실내악 곡을 즐겨 듣지 않았던 나를 실내악의 세계로 끌고 간 곡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슈베르트의 진짜 매력은 그의 실내악 곡에서 나타난다고 믿고 있을 만큼 그의 피아노 5중주 「송어」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를 비롯한 실내악 곡들을 사랑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D.934」는 그다지 널리 알려진 곡은 아니나, 걸작이라고 칭송하기에 마땅한 곡이다. 곡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곡은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둘 중 어느 한 악기만을 위한 곡은 아니다. 대개 바이올린과 피아노 이중주는 피아노가 반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곡에는 주연 배우만 있을 뿐이다. 또 작곡가가 형식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때 자주 붙이곤 하는 ‘환상곡’이라는 이름처럼, 어떠한 구애도 받지 않고 써내려 갔던, 그래서 더 와 닿는 곡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자신이 썼던 가곡을 다른 곡에서 활용하기를 좋아했는데, 이 곡에서도 역시 뤼케르트의 시에 곡을 붙여 만들었던 「입맞춤을 받아주오」라는 가곡의 주제가 변주의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환상곡 C장조 D.934」의 1악장은 한 남녀의 조심스러운 만남에서 시작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천천히 그리고 잔잔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말이다. 탐색 기간(?)을 가지던 두 사람은 점점 서로의 매력에 빠져들고, 조심스러웠던 목소리는 이내 상기되어 어느새 그곳에는 두 사람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서로에게 집중하게 된다. 두 사람의 사랑에 불꽃이 붙어버린 순간,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뜨거움에 격렬한, 아주 강렬한 키스를 주고받기 시작한다. 2악장, 환상곡이 시작되는 부분이다. 그들의 호흡과 몸짓은 단 한 번의 엉킴도 없이, 리드미컬하게 그리고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어 세상 어느 것보다도 아름다운 키스의 순간을 완성한다.
듀오 곡이나 실내악의 매력 중 하나는 악기들이 음악으로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는 것이다. 주고받는 멜로디가 그들 대화의 주제가 되고, 또 누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가 비교적 직관적으로, 선명하게 들린다는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재즈와 비슷하기도 해서 실내악을 좋아하는 계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 곡에서, 특히 2악장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는 그저 ‘대화’ 이상의 호흡을 주고받는다. 너무나 아름답고 강렬해서 마치 거친 숨을 내쉬며 격렬한 키스를 이어가는,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커플을 보고 있는 것 같아 심장이 두근거렸다. 곡을 듣고 있다 보면 악장 구분이 모호해서 마치 한 곡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그 때문인지 곡의 흐름에 더욱 몰입하게 되기도 한다.
야사 하이페츠나 기돈 크레머와 같은 거장의 음반도 많지만, 특히 추천하고 싶은 것은 율리아 피셔-마르틴 헬름헨의 연주이다. 여러 음반을 들어보면 연주 속도가 조금씩 다 다른데, 개인적으로 나의 호흡에는 이 음반이 가장 적절했다. 특히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둘 다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율리아 피셔이기에 피아노 연주자와의 호흡이 안정적인 것은 물론이고, 앞서거나 뒤서거나 하는 ‘밀당’의 기술이 뛰어나기도 하다. 무더운 여름만큼이나 뜨거운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사랑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주저하지 말고 들어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