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8일에 작성됨 원문 링크 바로가기

[윤한의 음악을 듣는 시간]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



마음이 힘들어 악상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억지로라도 피아노 앞에 가서 곡을 쓰기 시작한다. (2018. 09. 18)

|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나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 때 또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전날의 슬픔만이 나를 엄습합니다.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슬픔의 표현입니다.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세상을 가장 즐겁게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슬픔은 이해를 날카롭게 돕고 정신을 강하게 합니다.”


실제로 그랬다. 27살, 원인도 알 수 없는 병에 극심하게 고통받고 슬픔 속에 허우적댔던 한 작곡가가 남긴 이 곡은 수 세기를 날아와 내 마음을 단단하게 잡아주었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에 관한 이야기이다. 슈베르트가 이 곡을 쓸 무렵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고통으로 울부짖고, 심지어는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질환도 심해졌다고 알려져 있다.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또다시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랬던 그. 아무리 미루어 짐작해본다 한들, 다음날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랬던 그 아픔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까. 게다가 슬픔 속에서 작곡했다는 이 곡의 선율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발랄 하기까지 해서 고통스럽고 고독했던 슈베르트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실, 세상에 나온 모든 작품은 모든 과정을 이겨낸 결과물이자 모든 감정의 집약체이다. 슈베르트가 그의 슬픔 앞에 좌절하고 그것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이 곡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슬픔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이 곡에는 그의 슬픔뿐만 아니라 고통을 승화시켰던 강한 정신력과 인내, 그리고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과 이상을 바라보았던 그의 희망도 함께 담겨있는 것이다. 나도 종종 마음이 힘들어 악상이 떠오르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억지로라도 피아노 앞에 가서 곡을 쓰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곡이 완성될 때 즈음엔 나도 모르게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져 있었던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 그 악상은 미처 악보로 옮겨지지 못한 채 힘든 마음 속에 맴돌다 갇히는 것이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아픔에 지지않고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키고자 했던 강한 힘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슬픔 속에서 만들어진 음악이 세상을 즐겁게 할 것” 이라는 슈베르트의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사실 2018년의 여름은 많이 힘들었다. 그 와중에 지독하게 덥기까지 했으니, “잘 지낸다.”라는 말보다는 “잘 견뎌낸다.”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계절이었다. 어느새 선선해진 날씨가 힘들었던 여름도 끝나감을 알리고, 이제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던 어느 일요일 오후였다. 울창한 나무들 속 인적이 드문 공원 구석의 조용한 카페에서는 클래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페의 주인이 클래식 애호가였는지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브람스와 드뷔시의 곡을 비롯해 왠지 가을과 어울리는 선곡에 신기해 하던 참이었다. 그때,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가 들려왔다. 아름답고 깊은 선율에, 때로는 아이들이 뛰놀 듯 가볍고 발랄한 선율에 갑자기 마음 속 어딘가가 울컥하다가도 편안해졌다. 마치 나를 위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첼로의 음색은 따뜻했고, 그 선율은 마음을 어루만졌다.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는 원래 첼로를 위한 곡은 아니었다. 여섯 현을 가진 “아르페지오네”라고 하는 (소형 첼로와도 같은) 악기를 위해 작곡된 곡이었고, 현대에는 첼로나 비올라, 바이올린, 관악기, 관현악 등 여러 버전의 편곡으로 연주된다. 그 중 나는 첼로 버전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가장 좋아하는데, 첼리스트들의 증언(?)에 따르면, 음역대가 높고 리듬의 변화가 빨라 첼로로 연주하기에는 굉장히 난이도가 높은 곡이라고 한다. 추천하는 음반은 현존하는 거장 미샤 마이스키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있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첼로 연주와 영국의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의 반주로 녹음된 음반이다. 요요마, 미샤 마이스키 등 많은 첼리스트들의 우상으로 꼽히며, 평생 음악의 영향력에 대해 고민했던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는 세상을 즐겁게, 정신을 강하게 만드는 슈베르트의 음악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전달하고 있다.


혹시 지독했던 여름, 힘든 일이 있었다면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실어 저 멀리 날려보내자. 그리고 그 자신은 고통 속에 작곡했지만, 세상은 그 음악으로 즐겁기를 바랬던 슈베르트의 음악만을, 그 아름다움만을 마음 속 가득 채우는 가을이 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