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18일에 작성됨 원문 링크 바로가기

[윤한의 음악을 듣는 시간] 죽음 앞에서 위로하기



영혼을 달랜다는 진혼곡답게, 실제로 모차르트의 레퀴엠만 들으면 눈물이 나던 때가 있었다. (2018. 10. 15)

글 | 윤한(피아니스트, 작곡가)


“자신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천재 모차르트, 그리고 그런 모차르트를 평생 시기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노력형 음악가, 살리에르였다. 그런데 그의 시기는 도를 지나쳐 모차르트를 향한 음모로 발전한다. 심신 미약 상태인 모차르트에게 레퀴엠을 의뢰하여 그의 영혼을 점점 피폐하게 만드는 것인데….”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룬 영화 의 스토리이다. 실제로 정말 많은 사람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살리에르의 음모가 담긴 의뢰 곡이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음악 역사상 거의 최고로 손꼽힐 정도의 천재 작곡가였다. 5세에 작곡을 시작해 8세에 교향곡을 작곡한 것은 물론이고, 14세에는 10분이 넘는 곡을 단 한 번 듣고 완전히 악보로 옮겨 적는 초능력과도 같은 천재성을 보였다고 한다. 특히 모차르트의 자필 악보는 수정한 흔적이 없기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 모차르트는 “머릿속에서 완성된 스코어(총보)를 그저 오선지에 옮기고 있을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는 일화도 있다. 워낙 독보적인 천재성을 갖고 있었던 데다 성격이 강했던 모차르트였기에 당시 많은 (적당한 천재파, 노력파 등의) 음악가의 동경의 대상임과 동시에 질투를 한 몸에 받기도 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유명한 살리에르 역시 그중 한 명이다. “신은 나에게 천재를 알아볼 능력은 주셨으나 천재적인 능력을 주시지는 않았다”는 자조 섞인 말을 회고록에 남기기도 했던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의 등장에 자신의 권위가 무너지진 않을까 불안해하기도 했지만, 이미 궁정 음악가로서의 입지와 신뢰를 확실히 굳힌 터라 오히려 모차르트보다도 훨씬 안정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사실 그들은 모든 분야의 능력자(?)가 그렇듯, 선의의 라이벌이자 동시에 끈끈한 동지애를 가진 친구이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는 ‘살리에르의 음모’는 영화 속, 혹은 희곡 속 각색 버전으로만 남겨두기로 하자.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실제로 한 백작의 의뢰를 받아 작곡된 작품인 것은 맞다. 당시 모차르트는 심한 경제적 압박과 건강 악화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때문에 안타깝게도 그는 곡을 완성하지 못한 채 짧디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미궁 속으로 빠진 천재 작곡가의 레퀴엠이라는 소재가 아마도 많은 작가에게는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사후에 그의 제자를 포함한 다른 후대의 작곡가들에 의해 완성된 판본들이다. 그중 가장 많이 연주되는 것이 모차르트의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했던 ‘쥐스마이어’ 버전인데, 오늘 소개할 음반 역시 쥐스마이어 판본으로 녹음, 연주된 음반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하이든, 베버, 베토벤, 슈베르트, 쇼팽, 로시니, 베를리오즈 같은 음악가뿐 아니라 실러, 괴테, 나폴레옹을 비롯해 많은 저명인사와 유럽 왕족의 장례식에서 연주되었다고 한다. 죽음 앞에서 누군가의 길고 긴 ‘인생’을 음악으로 위로한다는 것,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이렇게 영혼을 달랜다는 진혼곡답게, 실제로 모차르트의 레퀴엠만 들으면 눈물이 나던 때가 있었다. 특히 나는 「Lacrimosa」를 가장 좋아하는데,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나의 모든 감정을 어루만져주는 듯한 신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늘 음반으로만 접하던 이 곡을 실황으로 본 적이 딱 두 번 있다. 오케스트라 곡으로 편곡된 버전의 실황 연주는 종종 접했는데, 성악과 합창까지 제대로 갖춰진 실황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중 한 번이 오늘 소개할 음반의 주인공인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공연이었다. 바로크 시대의 합창, 종교 음악이라는 흔하지 않은 분야를 주로 연구하고 연주하는 단체다.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비인기 종목(?)인 고음악을 사랑하는 음악인들이 모인 단체라니, 그 열정과 관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높은 합창단이었다. 공연의 감동은 글을 쓰는 지금도 잊히지 않을 정도로 상당했다.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세계적인 합창단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한 공간의 공기를 타고 온몸으로 스며드는 ‘콜레기움 보칼레 서울’의 모차르트 레퀴엠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웅장함과 따듯함, 포근함, 아름다움을 선사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한국 최고의 솔리스트들과 함께 음반을 발매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매우 오랜만에 궁금함으로 가득 찬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2018년도 석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남은 3개월 동안 매일 들어도 매일 새롭게 우리를 감싸줄 곡이다. 어쩌면 우리의 2018년을 가장 아름답게 위로해줄 하나의 곡이 될 것이다.